말씀나누기

성령 충만의 길 ② - 회개(눅 15:11-32)

임헌준 2016. 5. 28. 18:07


성령 충만의 길 - 회개

(15:11-32)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둘째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자기 분깃의 재산 받아 아버지를 떠나 멀리 외국으로 가서 허랑방탕하여 재산을 낭비합니다(11-13).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아버지께 많은 선물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의 곁을 떠나 허랑방탕하며 하나님께 받은 선물을 헛되이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가지고 간 재산도 바닥이 나고, 크게 흉년이 들어 궁핍한 처지가 됩니다.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려고 하지만 그마저도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14-16).

 

이런 상황에서, 그래도 지혜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합니다. 둘째 아들은 외국에서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되면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후회를 합니다(17). 그리고 반성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아버지께로 돌아갑니다(18-20a).

 

회개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고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 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19), 이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깨달음과 겸비한 마음이 없이 회개한다고 하는 것은 진정한 회개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녀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맞이하십니다. 저 멀리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본 아버지는 달려가 끌어안습니다. 크게 기뻐하며 잔치를 엽니다(20-24).

 

죄 가운데 빠져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자녀를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독생자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면서까지 자녀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니, 자녀가 죄와 사망의 어둠 가운데 방황하다가 잘못을 깨닫고 아버지께 돌아올 때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맏아들은 둘째 아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아버지의 집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아버지의 명을 어기지 않고 살았습니다(29). 들에 나가 일을 했습니다(25). 그런데 오늘 동생이 돌아왔다고 아버지가 살진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열은 것에 대해 분노하여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왜 자신에게는 그동안 염소 새끼라도 주어 벗들과 즐기라고 한 일이 없으면서, 방탕하게 생활하여 재산을 탕진한 동생이 돌아왔다고 이리 성대한 잔치를 여느냐는 것입니다(25-30).

 

맏아들이 이해가 되십니까?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하십니까?

 

맏아들은 자기 자신만 생각합니다. 아버지 생각도 없고, 동생 생각도 없습니다. 동생이 집을 나간 후 날마다 동생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린 아버지를 생각한다면 그럴 수 없습니다. 맏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도 않고, 아버지를 사랑하지도 않습니다.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니 기쁘게 따르겠다는 마음도 없습니다.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얻었다고 기뻐하는데, 맏아들은 형이 돼서 조금도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허랑방탕하여 재산을 탕진했지만 그래도 동생인데, 형으로서 동생에 대한 사랑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럴 수가 없습니다.

 

맏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있지만 아버지의 것이 자기 것인 줄 알지 못합니다(31). 맏아들은 아버지가 자기에게 주는 것이 얼마나 크고 좋고 많은지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 맏아들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이 언제든지 맏아들이 될 수 있습니다. 물누가복음 1511-32절 비유에서 1차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둘째 아들은 회개하고 돌아온 죄인들이고, ‘맏아들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을 가리킵니다. 그렇지만 오늘 우리에게 이 본문 말씀을 적용시킬 때, 우리가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도 맏아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도 종종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많은 것들을 알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내 생각만 하며 분노하기도 합니다.

 

교회 바깥에 있는 사람들만 둘째 아들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 맏아들이 되는 순간 탕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심령은 이미 교회 바깥에 있는 둘째 아들입니다. 맏아들 상태가 되면 영적으로 아버지를 멀리 떠난 탕자입니다. 심각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삶이 곤궁해 집니다. “크게 흉년이 들고 궁핍한 처지까지 이르게 됩니다. 심하면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려고 하지만 그마저도 주는 사람이 없게 됩니다. 삶에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맏아들이 될 때마다 빨리 깨닫고 돌아서야 합니다. 겸비함으로 아버지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잔치를 여십니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가 있게 됩니다. (2016. 5.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