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약자의 권익이 보호받는 사회

임헌준 2008. 10. 15. 16:49

약자의 권익이 보호받는 사회


임헌준(예은교회 목사, Ph.D) 


출애굽기 21:22-25은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임신한 여인을 쳐서 낙태하게 한 경우에 관한 규례이고, 레위기 24:17-22은 어떤 사람이 자기 이웃에게 피해를 입혔을 경우에 관한 규례이다. 이 두 규례에서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을 경우 그가 피해를 입힌 만큼,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도록 규정하고 있다(출 21:24; 레 24:20).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이라고 불리는 이 규례의 목적에 대해 학자들은 다양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월터 카이저(Walter C. Kaiser)는 이 법이 각 개인에게 그가 받은 해를 복수하도록 허락하려는 의도에서 제정된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입은 손해와 동등한 수준의 보상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강사문은 이 법이 복수가 반복되는 것을 방지하고, 피해에 상응하는 보상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정중호는 사람에게 상해를 입혔을 경우 금전으로 정확히 배상하도록 촉구하는 법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고 본다.


김이곤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가해한 만큼의 보상을 해 주거나,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동등한 보응을 받음으로 과실치사를 방지하고 인체 피해의 회복을 보장하려는 목적을 지녔다고 본다.


반면에 카수토(Umberto Cassuto)는 동태복수의 원칙을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았을 때에는 그 생명의 값을, 눈을 멀게 하였을 때에는 그 눈의 값을 배상해 주는 것”으로 해석하는 주석가들의 견해에 반대하면서, “상해를 입었을 경우에 가해자에게 같은 형태의 상해를 입힌다”는 탈리온법(lex talionis)이라고 불리는 고대 로마법의 원칙이 구약성경의 동태복수법에도 적용된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한다.


필자는 원칙적으로 카수토의 주장에 동의한다. 하지만 오늘날 이 법을 문자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피해자가 입은 손해에 상응하는 보상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법을 동태복수의 형태로 적용하든, 보상의 형태로 적용하든, 이 법의 일차적인 목적은 약자가 자신보다 힘이 센 강자로부터 피해를 입었을 경우, 혹은 그 반대로 약자가 강자에게 피해를 입혔을 경우에 강자의 횡포로부터 약자의 권익을 제도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경우로서 약자가 강자로부터 피해를 입었을 경우, 피해자인 약자가 가해자인 강자에게 자신이 받은 피해만큼 갚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여 주지 않는다면, 약자는 강자에게 당하기만 하고 자신이 입은 피해에 대해서는 하소연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예언자들은 당시 사회에서 힘 있는 자들의 힘없는 민중들에 대한 폭력행위를 고발하고 있다(암 2: 7; 미 3: 2-3; 사 3: 15). 동태복수법은 이처럼 강자들의 폭력이 횡행하는 상황에서 힘없는 사람들이 강자로부터 피해를 입은 만큼 갚을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해 준다. 이렇게 함으로써 약자는 자신의 권익을 지키게 되고, 강자는 약자에 대한 폭력을 자제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 경우로서, 힘없는 약자가 자신보다 힘이 센 강자에게 피해를 입혔을 경우, 피해자인 강자가 가해자인 약자에게 자신이 입은 피해 이상으로 부당하게 복수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방지하지 않는다면, 강자로부터 약자는 자신의 잘못 이상으로 과도한 복수를 당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에 동태복수법은 가해자인 약자에게 피해자인 강자가 그가 입은 피해 이상으로 복수하는 것을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가 된다.


오늘날에도 힘없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작은 잘못에 대해 지나치게 무거운 책임을 지는 경우도 있고, 큰 피해를 입고서도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법률구조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아직은 충분치 못한 실정이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보다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법률구조제도를 보완하길 기대한다. 약자의 권익이 보호받는 사회를 소망한다.


(크리스챤신문, 2008. 10. 11. 교회시평)